서론
체외순환보조장치(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ECMO])는 급성 심폐부전이 있는 환자의 다양한 적응증에서 사용되고 있고 최근 Extracorporeal Life Support Organization (ELSO) 레지스트리(Registry)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100,000 이상의 생존자를 발표하였다[1]. 적응증이 더욱 확장되고 ECMO가 없이는 과거 생존할 수 없었던 많은 환자가 생존하게 되면서 원하지 않는 합병증에 대한 경험도 축적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적극적으로 ECMO를 활용하게 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량이 급증한 2009년 H1N1 전 세계 대유행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Giles Peek에 의해 진행된 CESAR (conventional ventilatory support versus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for severe adult respiratory failure) 다기관 연구[2]는 전 세계 ECMO 사용 확산에 큰 영향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심장 수술을 시행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들에 의해 시작되어 점차 확장되면서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발한 연구와 진료를 겸하고 있다. 저자들은 다양한 분야의 ECMO 전문가들에게 한글로 된 교육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2020년부터 ELSO와 함께 Redbook 제5판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2023년에 발간되었다. 번역 작업 당시 ECMO와 연관된 많은 단어가 한국어로 번역하기 어렵고 영문 자체로만 사용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에 번역에 필수적인 단어들은 해당하는 각 분야의 ECMO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하고 결정하게 되었다. 이 단어들은 추후 변경될 여지가 남아있지만, 이 종설에서는 당시에 논의되어 결정되었던 '체외순환보조장치' 와 ECMO를 혼용하여 사용한다.
본 종설은 ELSO Redbook the 5th edition, 한국어 번역판에 실린 1장 체외순환보조장치의 역사와 발전 부분에서 내용을 발췌하여 요약 정리하였다[3]. ECMO의 초기 개발단계와 그 이용의 전 세계적 확산 등의 경험을 이해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체외순환보조장치: 초기경험
ECMO의 개발은 오래전부터 여러 분야의 연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1693년 Jean-Baptiste Denis가 살아있는 양과 사람 사이 혈액을 수혈하는 실험을 시작으로 1860년에는 Benjamin Ward Richardson이 동물 모델에서 산소와 혈액을 우측 심장에 주입하여 인공순환을 만드는 실험, 1920년대에는 러시아 의사인 Sergei Brukhonenko가 혈액 산소 공급을 위해 동물의 폐를 잘라 사용한 전신 관류 시스템을 개발한 실험과 그 후 거품 산화기(bubble oxygenator)를 개발하여 심장을 분리한 상태에서 시행한 동물 실험 등이 시행되었다[4,5].
John Gibbon이라는 외과의사가 1931년 폐 색전증으로 사망한 소아 환자를 경험하고 난 후 이는 급성질환 환자들에게 심폐기능을 대체하는 방법을 찾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4]. Dr. Gibbon은 이후 체외순환 보조장치를 위한 독립형 롤러 펌프(roller pump) 장치를 개발하였고 이는 초기 심폐 기계(heart-lung machine)의 모델이 되었다[4]. 하지만 초기 모델은 피아노 크기로 매우 큰 크기였고 결국 이 장비를 실제 수술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2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1953년 5월 6일 역사적으로 18세 심방중격결손 환자에서 체외순환 보조 하에 첫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였다. 하지만 수술실 환경에서 체외순환보조장치의 사용이 가능함은 입증되었지만, 수술실 밖에서 장시간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남아있었다. 체외순환 보조장치의 중환자실에서 사용은 제한적이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산소에 직접 노출되면서 발생하는 혈액 성분이 손상되어 수 시간 내에 용혈을 일으켰기 때문이다[6,7].
체외순환 보조장치를 개발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수술실 안과 밖에서 더 오랜 시간 동안 사용 가능한 장치 개발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기본적인 두 가지 혁신은 실리콘의 발명과 항응고요법이었다. Dr. Robert Bartlett 등의 연구자들은 장기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실리콘 막형 산화기를 개발하는 실험을 공동으로 진행하였고[4,8,9], 이후 실리콘 막형 산화기를 사용하면서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고무적으로 이를 이용하여 동물 모델에서는 수일간 체외순환이 가능해졌다[10]. 또한 Dr. Robert Bartlett과 공동 연구자들은 장기적인 체외 순환 시에는 적은 양의 헤파린으로 응고 형성과 출혈 없이 수일간 체외순환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활성 응고시간을 통해 응고와 헤파린 투여량을 지속적으로 적정화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였고 이 방법은 40년 이상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고 있다[7].
선천성 심질환 소아에서 수술 중 혹은 수술 후 체외순환 보조장치를 사용하면서 더 장시간 수술의 시행이 가능하게 하였다. 1972년 Dr. Bartlett, Dr. Gazzaniga와 동료들은 대혈관전위로 Mustard 수술을 시행 받은 후 심부전이 발생한 2세 소아에서 심장 보조를 위한 체외막산소공급장치를 36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시행하였고 이를 첫 증례로 보고하였다[11]. 이후 적응증은 복합 심장 병변의 수술적 치료 후 심부전이나 저심박출증(low cardiac output)으로 확장되었다.
기술이 발전되면서 Dr. J.D. Hill은 1972년 중환자실 환경에서 최초로 성공적인 캐뉼러 삽입과 장시간 체외순환 보조장치 사용을 보고한 바가 있다[12]. 이 환자는 24세 남성으로 오토바이 사고 후 대동맥 파열과 외상 후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 발생하여 Morrie Bramson에 의해 개발된 막형 산화기를 이용하여 75시간 동안 정동맥(venoarterial) 보조 후 생존하였다.
또한 신생아에게서의 ECMO 사용도 점차 확대되었다. Dr. Robert Bartlett은 1975년 태변흡인성 폐렴과 이로 인한 폐동맥 고혈압으로 악화된 신생아를 치료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신생아집중치료실 병상으로 산화기를 가지고 와 72시간 동안 ECMO 시행 후 회복하였다[13,14]. 아이의 엄마는 동의서에 사인만 한 후 사라졌지만 아이는 생존 하였고 간호사들은 아이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희망을 의미하는 Esperanza로 지어 주었다[15]. Dr. Robert Bartlett은 이후 치료한 16명의 환자 중 3명의 생존자를 보고하였고, 이후 임상 결과가 지속적으로 개선되었음을 보여주었다[16-18]. 신생아 질환에서 지속적인 성적의 향상으로 과거 10%였던 생존율은 현재 75%로 상승하게 되었다.
신생아 및 소아 ECMO 환자에서 초기 무작위대조 임상시험 경험
초기 경험을 볼 때 일반적으로 새로운 의학적, 기술적 치료들이 성인에서 먼저 시행되던 관습과 달리 ECMO의 사용은 신생아에서 더 먼저 폭넓게 사용되었다. 의료계에서 지속적인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표준치료법에 비해 신생아 ECMO 치료의 장점을 증명하기 위한 무작위대조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이 필요하게 되었고 Dr. Robert Bartlett과 미시간대학의 동료들은 ECMO RCT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연구 기간 ECMO를 처음 치료받은 환자가 생존하였고, 표준치료에 무작위 배정된 다음 환자가 사망하면서 의료진들은 ECMO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했고, 다음 환자 10명은 모두 ECMO로 치료받고 생존하였다(p=0.0000001). 1985년에 발표된 이 연구는 대조군 환자에게는 동의서를 받지 않았다는 심각한 논쟁이 있었지만, 결과만으로 볼 때 신생아에 대한 ECMO 사용을 장려하게 되었다. ECMO를 시행하는 센터는 1990년대 초 전 세계 18개 센터에서 현재는 500개 이상의 센터로 성장했다. 기술적 발전 덕분에 신생아와 소아에게 ECMO의 적용이 흔한 치료법 중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 전향적 임상 연구는 별도의 중환자실에서 진행되었고 각각의 중환자실에서 ECMO와 non-ECMO 치료 환자를 비교하였다. 보스턴 어린이병원의 소아 중환자실 의사인 Pearl O' Rourke는 2단계 RCT를 진행하였다. 전체적인 결과는 전체 ECMO 환자 20 중 19명(97%)이 생존했지만 표준치료 대조군 환자는 60%가 생존하였다[19]. 1989년에 발표된 이 연구는 의학계와 언론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20].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의료전문가와 일반 언론에서 ECMO를 시행하지 않고 표준치료만으로 무작위 배정하는 것은 비윤리적임을 주장했지만, 이는 오히려 ECMO 치료가 곧 표준치료의 기준임을 증명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신생아에서 지속성 폐고혈압에 ECMO 적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RCT는 현재까지 1993–1995년 영국에서 수행된 연구[21]가 가장 큰 RCT로 남아 있다. Dr. David Field, Dr. Richard Firmin 등이 참여한 이 연구는 55개의 센터가 등록했으며, 해당 지역의 의료 ECMO 시스템을 활용하여 무작위배정을 통해 진행되어 환아들은 표준치료를 위해 있던 센터에 머물거나 지역 ECMO 센터로 전원 되었다. 두 그룹 간 유의한 생존율 차이(ECMO 환자의 경우 60% vs. 표준치료의 경우 40%)를 보이면서 신생아 호흡부전이 있는 경우 ECMO 치료의 우월함을 밝히고 ECMO의 가치를 확립하게 되었다.
신생아 ECMO의 사용은 1992년 연간 약 1,500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흡입형 산화질소와 같은 새로운 치료법이 추가로 개발되면서 ECMO를 필요로 하는 신생아 수가 감소하여 현재 신생아 사용량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치게 되었다. 소아에서 심부전과 호흡부전에 ECMO 사용은 생존자들이 늘어가며 더 많은 센터에서 사용이 점차 증가했다. 소아 호흡부전에서는 ECMO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증례들이 보고되었지만 비교적 적은 수로 ECMO에 대한 궁극적인 결론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현재까지 새로운 소아 RCT는 없지만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CMO 이용의 세계적 확장
신생아 영역에서 ECMO 사용은 세계적으로 증가하였다. 소셜 미디어가 활발하지 않던 당시에는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의 개념으로 ECMO에 대해 홍보하였다. ECMO에 대한 정보 전달은 ECMO 문제를 다루는 학회와 네트워크를 통해 가속화되고 경험이 풍부한 센터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센터를 개발하면서, 국내와 국제적으로 여러 센터가 생겼다. 1986년까지 19개 기관에서 신생아에게 ECMO를 적용하였고[22], 이후 자발적인 센터들의 연합이 생겨 1989년 운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ECMO 지부인 ELSO를 형성하기 위한 규정이 제정되었다. ELSO의 목적은 데이터를 모으고 결과를 비교하여 ECMO를 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고, ELSO 학회에서는 ECMO를 수행하는 소수의 기관 대표가 참여하여 경험을 공유하였다. ELSO는 ECMO 센터의 운영과 많은 센터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침을 개발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ELSO 우수센터에 대한 상(Award of Excellence)은 ELSO 권장 사항을 준수하는 센터들을 인정하기 위해 개발되었고 현재는 기관의 의료 질에 대한 지표로 인정받고 있다. ELSO의 또 다른 주요 역할에는 교재 출판이 있다. ECMO에 대한 교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2년에 “Red Book”으로 알려진 이 교재의 창립판을 편찬하였다. 가장 최근 개정판 Red Book은 현재 ELSO 학회 회장인 Graeme MacLaren이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며 ECMO 커뮤니티 전문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2022년 제6판을 발간하였다. 또한 ELSO 레지스트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체외순환보조장치 연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고, 2024년까지 현재 223,721명 이상의 환자데이터가 등록되어 있다.
ECMO 사용의 세계적 증가에는 수십 년 간의 노력이 있었고 특히 성인 호흡부전과 심부전에서 사용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었다.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ELSO 지부의 설립이 필요하게 되었고, 2011년 유럽에서는 EuroELSO로, 2013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Asia Pacific ELSO로 공인되었고 그 후 연달아 같은 해인 2013년에 중남미 지역에서는 Latin American ELSO와 남서 아시아 지역 South and West Asia ELSO 챕터가 공인되었다. 이러한 조직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탄탄한 학술모임, 교육과정 확대 및 ECMO 시행 의료진과 센터들 간의 국제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였고 2023년 서울에서 국내외 석학들이 참석하여 제6회 Asia Pacific ELSO 학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앞으로도 ECMO 기술 개선, 결과 예측, 최상의 적응증 확립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국내 ECMO 현황
세계적 ECMO의 발전과 발맞춰 국내에서도 여러 단체가 ECMO 연관하여 학술 모임과 교육과정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 ELSO와 함께 2023년 ELSO Redbook the 5th edition 한국어 번역판이 처음 발간이 되었고 공인된 가이드라인의 번역 작업을 통해 교육 자료를 ELSO 웹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용어 확립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함께 고민하여 용어를 확립하고 또한 국내 현실에 맞는 교재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또한, 국내 ECMO 시행 의료진들은 다양한 분야에 속해 있어 더욱 확장하고 포용하는 학술 단체가 필요하다.
결론
본 종설은 ELSO Redbook the 5th edition, 한국어 번역판에 실린 1장 체외순환보조장치의 역사와 발전 부분에서 내용을 발췌하여 요약 정리하였다. 체외순환보조장치의 초기 개발 단계와 그 이용의 전 세계적 확산 등의 경험을 이해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적 ECMO의 발전과 발맞춰 국내에서도 용어 확립이 다시금 필요하고 또한 국내 현실에 맞는 교재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국내에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더욱 확장하고 포용하는 단체가 필요함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